[교육 에세이] 넘어야 할 한국어의 문턱, 채워야 할 대학의 교육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이해영 교수님께서 『대학 지성』에 기고하신 교육 에세이입니다.
한국어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글로, 학과 구성원 여러분께 공유해 드립니다.
원문 : 대학지성 In&Out(http://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026)
<넘어야 할 한국어의 문턱, 채워야 할 대학의 교육>

태국국제한국어교육학회 창립총회에 참석한 태국 전국 19개 대학 학과 대표
1월의 방콕은 한여름의 서울만큼이나 뜨거웠다. 그러나 쭐랄롱꼰 대학교에서 열린 토론회는 그 열기마저 압도했다. 한국어 학습자가 급증하고,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운 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늘어나면서 태국에서는 한글 자모부터 가르치는 기존 대학 교육과정에 변화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학습 목표도 취미 수준을 넘어섰다. 취업과 기업문화, 통번역 등 실용 한국어는 물론 문화·예술을 포괄하는 한국학, 나아가 한국의 사회·역사·과학기술까지 아우르는 내용으로 학습 수요가 다변화되고 있다. 누군가는 여전히 ‘가나다라’부터 배워야 하지만 누군가는 한국문학의 진수에 접근하고 싶어하는 집단 간 수준과 목표의 격차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두고 방콕 인근 대학 소속의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들의 고민은 태국한국어교육학회를 결성하는 동력이 되었다.
태국의 한국어교육은 숫자만으로도 그 위세를 짐작하게 한다. 태국에서는 2018년 당시 한국어가 대학 입학 시스템(TCAS)에서 활용되는 PAT 제7영역(외국어) 선택과목으로 지정되면서 괄목할 만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2018년 기준 119개교 3만 7천여 명이었던 한국어 학습자는 2024년 말 209개교 4만 7천여 명으로 증가했다. 덕분에 ‘한국어/한국학’ 전공 설치 대학이 2018년 11개에서 2026년 현재 19개로 늘어났다. 교양과 부전공에서 10년의 성공 경험을 축적해야 전공 설치를 겨우 허가한다는 태국 쭐랄롱꼰 대학교의 엄격한 기준을 참작할 때, 10년도 채 되지 않아 전공 설치 대학의 수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졸업 기준으로 한국어 능력 3, 4급을 요구하는 대학들이 생겨나고 있고, 특정 대학에는 5급의 학생들이 입학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등 다양한 한국학 상식을 겨루는 퀴즈대회의 난이도와 깊이도 또한 감탄할 만하다.

태국에서 개최된 이화-KF 글로벌 e-스쿨 퀴즈대회 참가자들
물론 한국어와 한국을 배우려는 학생들로 현지 대학이 북적이게 된 것이 태국에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과의 교역이 활발할수록 학생들의 한국어 구사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가령, 현지에 진출한 한국의 유수 기업 취업이 목표인 베트남 하노이국립외대 학생들은 5, 6급 이상의 실력을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최근 국내 대학에서는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게도 입학의 문이 열렸다. 이로 인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거나, 통역 앱에 의존한 대학 생활을 이어가는 학생들도 생겨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글로벌 지표로 평가되고, 인구 절벽에 부딪힌 국가 생존의 문제와 연결되면서 현실은 무겁기만 하다. 유학생 30만 명 시대를 앞둔 지금, 교육자로서의 고뇌는 깊을 수밖에 없다. 소위 ‘한국어 0급’ 유학생이 1년간의 맹훈련만으로 전공 학과에 진입해 성공적인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낙관적인’ 태도가 초래할 위험에 대해 한국어교육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한다.
사실 외국인 유학생을 교실에서 만난 교강사들이라면 다 알고 있다. 입학은 가능했지만, 대학 수업은 이해할 수 없는 유학생들이 이미 교실에서 ‘불청객’이 되고 있다. 한국어 능력을 갖추지 못한 유학생의 존재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한국인 동료 학생과 교수자에게 전가된다. 적응 실패로 인한 유학생들의 이탈과 좌절 또한 대학 교육의 본령을 훼손한다.
우리 대학들이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한,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채 교실에 남겨진 이들 유학생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두말할 필요 없이 교실 언어 구사력 즉, 한국어 사용 능력이 아니겠는가.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위해서 영어 능숙도가 필요했듯이, 외국인들이 한국에 유학 와서 소속된 대학의 교육 철학에 맞게 양육되고 학문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 한국어를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와 저들의 젊은 꿈은 다를 게 없다.
한국어 소통 역량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유학생이 학업 좌절과 이탈로 이어지지 않도록, 그리하여 각 대학의 인재 양성 대상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체계적인 한국어 역량 강화 방안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대학에서의 성공적인 수학을 위해, 유학생들도 한국인 동료 학생들처럼 발표와 토론도 하고, 강의를 듣고 필기든 타이핑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관련 서적 탐독과 보고서와 발표 자료 작성 등에 요구되는 쓰기 기술도 갖추어야 한다. 한국어 능력이 낮은 학생일수록 더 많은 한국어 학습이 요구되지만, 학습 기회를 교실에서 행해지는 한국어 수업만으로 한정할 수도 없다. 때문에 멘토링, 스터디그룹이나 동아리 활동과 같은 교실 밖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어 능력을 제고하는 방안도 동시에 구안되어야 한다.
한국어가 서툰 유학생들에게 일상과 학업은 매 순간이 거대한 벽이다. 한국어의 장벽 앞에 낮아진 성취감과 위축감은 결국 한국인 학우들과의 갈등이나 심리적 부적응으로 이어지기 쉽다. 우리 대학들이 받아들인 이 미래 인재들이 겪는 고립을 그저 개인의 역량 탓으로 방임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대학이 나서서 이들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우리 대학 사회의 일원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적응 프로그램을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진정한 글로벌 캠퍼스는 문화적·언어적 배경이 다양한 학생들이 언어 장벽을 극복하며 학문적 성취와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비로소 구현된다. 우리가 맞이한 유학생을 각 대학의 건학 이념과 교육 철학에 맞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시키는 일은 우리 대학들에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지난해 11월 필자가 속한 이화여자대학교 호크마교양대학에서 개최된 우리말 백일장에서 한 유학생이 ‘미얀마의 메리 스크랜튼을 꿈꾸다’라는 글로 대상을 받았다. 대학의 역사를 탐방하며 교육의 힘을 체감했다는 그의 고백은,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한국어라는 문턱은 낮아졌으나, 그 너머에서 펼쳐질 교육만큼은 더 단단하고 풍성하게 채워내겠다는 다짐은 우리가 품어야 할 진정한 희망이다.

제1회 이화 호크마 유학생 한글 백일장 시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