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소식] 미국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삶: 안정옥 박사 인터뷰
안정옥(Jeong-Ok A.) Lee 박사는 1973년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75년부터 미국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는 이화의대 동문이다. 이번 인터뷰는 2025년 9월 30일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본 기사를 통해,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의사로서의 삶과 더불어 후배 의사들에게 전하는 안정옥 박사의 따뜻하고 깊이 있는 조언을 전하고자 한다.
Q. 안녕하세요, 안정옥 박사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귀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박사님의 이야기가 많은 독자들에게 큰 영감과 용기를 줄 것이라 믿습니다. 먼저, 미국에 정착하시게 된 계기와 의사로서의 초기 경험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저는 소아과를 전공했는데, 당시 한국의 소아과는 아직 발전 단계에 있었습니다. 미국에 가면 더 많이 배우고, 그 지식을 후배들에게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제 남편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법학을 더 공부하길 원했기 때문에, 두 가지 이유가 맞아떨어져 미국행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Q.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시면서 언어 장벽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A. 솔직히 말하자면 따로 영어를 공부할 시간은 없었어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인턴십을 시작했는데, 주당 80시간 정도 일했습니다. 일하면서 배우는 수밖에 없었죠. 거의 잠도 못 자고 일만 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혔어요. 생존이 걸린 문제였으니까요. 레지던시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의학 지식만큼 의사소통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영어 수업을 듣고 꾸준히 연습하면서 점점 나아졌습니다.
Q.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 가장 힘들었던 점과 보람 있었던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A. 가장 힘들었던 건 체력적인 부분이었어요. 미국 사람들은 체격이 크잖아요. 저는 체구가 작아서 따라가기 버거웠습니다. 게다가 레지던트 시절 아기를 낳았는데, 주 80시간씩 일하면서 육아까지 하려니 정말 버거웠죠. ‘내가 이걸 다 해낼 수 있을까’ 싶을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 시기를 견뎌낸 뒤엔 큰 성취감을 느꼈어요. ‘기술만큼 체력도 중요하다’는 걸 몸으로 배웠죠.
Q. 기억에 남는 환자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A. 소아과 레지던시를 마친 뒤 2년간 소아 혈액종양학 펠로우십을 했어요. 당시 급성 림프모구백혈병(ALL)이 흔했는데, 생존율이 지금처럼 80~90%가 아니라 50% 정도였죠. 열 살짜리 아이가 두 번째 재발을 했을 때, 사실상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해 중단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첫 번째 재발도 이겨냈잖아요. 이번에도 이길 거예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환자보다 먼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걸 그때 배웠어요. 환자들은 끝까지 희망을 붙잡고 있으니까요.
Q. 한국인 의사로서 특별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A. 저는 주로 한인 커뮤니티에서 일합니다. 환자의 절반 정도가 한국인이에요. 그래서 제 환자들을 제 아이처럼 대합니다. 그들이 뿌리를 지키면서도 사회의 리더로 자라길 바라요. 진료실에서는 단순히 의료적인 조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책임감 있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생의 방향을 함께 이야기해 줍니다. 의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필요한 경험을 쌓게 돕고, 병원에서 추천서를 써 주기도 해요.
Q. 바쁜 의사 생활 속에서 가족이나 여가와의 균형은 어떻게 잡으셨나요?
A. 엄마로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큰 책임이에요. 가능한 한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려 했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하더군요. “엄마, 1년에 몇 번 여행한 것보다 매일 같이 있어준 시간이 더 중요했어요.”라고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여성 의사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Q. 이제 박사님의 전문적인 성장과 의사로서의 가치관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현재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A. 저는 원래부터 아이들을 정말 좋아했어요. 아홉 남매 중 다섯째로 자라다 보니, 동생들이 아플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가족 중 의사가 몇 분 계셨는데, ‘저분들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큰 가족 속에서 자란 경험이 자연스럽게 소아과로 이끌었죠.
Q. 전문의로 인정받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이화에서 배운 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거예요. 또 제 신앙이 늘 저를 이끌어줬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라면 반드시 길을 열어 주신다고 믿어요. 그런 믿음과 이화에서 배운 근성과 함께, 공부든 체력 관리든 늘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게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Q. 의사로서 가치관에 영향을 준 사람이나 경험이 있나요?
A. 예수님이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셨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며,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르치고, 치유하고, 복음을 전하신 일—을 늘 본받고 싶었어요. 환자가 잘 회복되면 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결과가 좋지 않아도 신앙이 제게 희망과 겸손을 줍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의사로서 제 가장 큰 힘이에요.
Q. 시대가 변하면서 의사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졌다고 보시나요?
A. 예전엔 의사가 환자에게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입장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존중과 안내’의 시대입니다. 환자에게 선택권을 주면, 그들이 자신의 건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돼요. 다만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예외죠.
Q. 진료 중 윤리적 갈등을 겪은 적도 있었나요?
A. 백신 관리 같은 문제에서 유혹을 받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정직하게, 문제를 직접 마주하는 게 가장 바른 길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인정하는 게 책임 있는 의사의 자세예요. 제 신앙이 그런 상황에서 겸손과 정직을 지킬 수 있게 도와줍니다.
Q. 동문 활동이나 한인 커뮤니티와의 교류가 경력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A.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LA의 동문들과 한인 의사들은 서로 격려하며 성장합니다. 이런 네트워크는 전문성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큰 버팀목이 됩니다.
Q. 의사로서 살아오시며 느낀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인가요?
A. 소아과의 목적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신체적·정서적·영적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거예요. 출생부터 성인기까지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 그것이 제 일의 가장 큰 의미입니다.
Q. 후배 의사들을 지도하실 때 가장 강조하시는 원칙은 무엇인가요?
A. 경쟁보다 협력을 강조합니다. 서로의 강점을 발견하고 함께 성장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의대나 레지던시에 들어가면 전공에 완전히 몰입해야 합니다. 체력, 신앙, 그리고 든든한 인간관계가 성공의 핵심이에요. 학생 때는 여가도 즐기되, 레지던시가 되면 오롯이 헌신해야 합니다.
Q. 이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여쭙겠습니다. 이화여대 재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A. 대학 시절을 즐기세요. 신앙을 다지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친구들과 서로 격려하세요. 예를 들어, 손기술이 좋은 학생은 외과에, 사려 깊고 분석적인 학생은 내과나 소아과에 잘 맞을 거예요. 전공이 정해지면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경험을 쌓으세요.
Q. 빠르게 발전하는 의료 환경 속에서 미래 의사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새로운 기술에 꾸준히 적응하는 능력입니다. AI와 유전학은 질병의 본질을 빠르게 바꾸고 있어요. 예전엔 10년 걸리던 일이 이제는 1년이면 가능할 정도예요. 소아과에서도 AI가 진료에 활용되고 있으니, 젊은 의사들이 이런 분야에 열린 자세로 다가가야 합니다.
Q. 국제무대에서 경쟁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주신다면요?
A. 지금부터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 경험을 쌓으세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려면 시작부터 준비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Q. 힘든 시기를 겪는 젊은 의사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요?
A. ‘내가 왜 의사가 되었는가’를 늘 되새기세요. 그 사명과 목적을 잊으면 흔들리게 됩니다. 어려움은 성장의 기회입니다. 그것을 통해 실력과 의지를 다지세요.
Q. 마지막으로, 인생 선배이자 의사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지혜가 있다면요?
A. 의학이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입니다. 정확한 진단, 올바른 치료, 질병 예방—이 모든 것은 사랑과 헌신에서 나옵니다. 저는 후배들이 하나님께 기도로 시작해, 그분의 인도 속에서 환자를 따뜻한 마음과 인간애로 돌보길 바랍니다.
안정옥 박사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어린 환자들에 대한 깊은 책임감과 후배 의사들을 향한 따뜻한 조언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미국에서 한국인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되었고, 의사로서 갖춰야 할 가치와 마음가짐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래는 안정옥 박사의 도움으로 해외 실습을 마친 강서영 교수(이대서울병원 핵의학과)와 김수정 교수(이대서울병원 산부인과)의 후속 인터뷰이다.
Q1. 안정옥 선생님께서 후배들에게 베풀어 주신 도움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었을까요?
강서영 교수
저는1학년 겨울방학 때, 해외 임상실습 기회를 통해 안정옥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소아과 클리닉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공항 픽업부터 시작해서 저를 선생님 댁에서 머무르게 하시며 모든 일들을 세심하게 챙겨 주셨습니다. 아침에 함께 병원으로 출근해서 그곳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며 임상 현장을 경험했고, 퇴근 후에는 저녁을 먹고 함께 기도하며 크리스찬 의사로서의 삶에 관해 배우며 저의 신앙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UC Irvine Medical Center 에서 일하시는 동료 선생님을 소개해 주셔서 그곳의 임상 현장 역시 경험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쉬는 날에는 직접 운전하셔서 San Diego 동물원에 데려가시는 등 정말 큰 사랑으로 저에게 많은 것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김수정 교수
전공의 4년차 때 단기 해외 파견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어 산부인과 김영주 교수님께 문의했습니다. 소개받은 안정옥 선생님께서 감사하게 미국California, Anaheim 파견 병원과 숙소를 마련해 주시며, 많은 동문 선배님들을 소개 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미국 병원 실습 시 환자 응대와 기본 태도 뿐 아니라, 크리스천 의사로서 신앙과 삶에 대한 모범까지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Q2.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시게 된 계기와, 그곳에서의 경험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강서영 교수
2007년 겨울, 당시 학교에서 BK21프로젝트로 진행하는 해외 임상실습에 지원을 했고 선택이 되어서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크리스찬 리더십의 이해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는데 그 수업의 담당 교수님을 통해서 안정옥 선생님께 연결되어 선생님의 소아과 클리닉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안정옥 선생님 소아과 클리닉에서의 경험을 통해 미국 local 소아과의 임상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또한 UC Irvine Medical Center 의 진료 현장을 경험하며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안정옥 선생님과 동료 선생님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의사로서의 마음가짐, 그리고 미국에서 의사로서의 삶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정말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김수정 교수
단기 해외 파견을 준비하며 미국 의료 시스템 및 수련 환경을 경험하고자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내가 이화에서 배운 의료가 현지에서도 통한다는 점과 두 의료 시스템의 장단점을 몸소 느껴, 진로 선택에 큰 도움이 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Q3. 마지막으로, 의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나 조언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강서영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에 감사하며 후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많은 것을 베풀어주고자 하시는 선배님들이 계심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소중한 시간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누리고 경험하며 의사로서 올바른 가치관과 소명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적극적으로 해외 임상실습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시야를 넓히고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가기를 응원합니다.
김수정 교수
나의 생각은 경험에 기반해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이미 그 길을 걸어간 교수님이나 선배님께 조언을 구하면 예상치 못한 방법을 알 수 있으니,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고 경험하길 권합니다. God bless you~!
출처: 의과대학 학생기자(정서화), 의과대학 정보관리부